작성일
2014.11.04
수정일
2014.11.04
작성자
옥지훈
조회수
585

하계 연구실 단합대회, 2004


2004년도 하계 연구실 단합대회


 

유난히도 무더웠던 2004년 다들 여름의 더위에 지쳐갈 즈음 모두들 찾는 바다가 아닌 좀 더 색다른 곳, 산 그것도 강원도 골짜기 산으로 우리의 여름 MT가 시작되고 있었다. 별을 관측하러 갈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MT 첫날 아침 모두들 아침잠이 덜 깬 듯 약속 장소로 향하였다. 암묵적인 동의로 우리는 언제나 회식하던 식당 맞은편 아파트 중 한 곳이 교수님 댁이라 생각하고 그리로 향하였다. 그곳에 도착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우리의 실수를 알았고, 이러한 해프닝으로 우리의 여름 MT가 시작되었다.


 


1차 목적지인 강원도의 천문인 마을로 향하던 중 우리가 당도한 곳은 목적지가 아닌 문경의 한 마을 이었다. 그곳엔 금방이라도 불붙을 것 같이 바짝 마른 장작과 커다란 아궁이를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자그마한 풍경 뒤로 아주 멋들어진 절벽의 풍경이 펼쳐져 있던 것이다. 이러한 첫 인상을 가지고 들어간 집의 거실엔, 다기들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천한봉선생

 

  그 곳은 다름 아닌 한국도예장인으로 불리는 천한봉 선생이 일가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다기의 문외한인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냥 다 비슷해 보였다. 영문모를 친근감을 풍기는 것이 우리내의 전통 다기인 것 같았다. 이렇듯 한 평생을 한길만을 고집하여 살아온 선생의 모습은 다소 수수해 보였다. 이렇듯 우리들의 지친 정신과 눈을 정화하기에는 이곳만한 곳이 없으리란 생각을 하며 아쉬운 듯 그곳을 나와 우리의 갈 길을 재촉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 이지만 첫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러 해프닝이 있었고, 또한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억되는 것은 기름 사건이다. 모두들 같은 경험이었겠지만 아마도 우리들은 그 일 이전에는 기름 없는 주유소를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장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기름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창 길을 재촉하던 중 우리 쪽 차에 기름게이지 불이 들어왔다. 우리는 산속을 해매여 한 마을에 당도했고 주유소를 아주 손쉽게 찾았다. 그러나 이게 어쩐 일인가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이 이후 우리는 기름이 배달될 때 까지 거기서 기다려야 했고, 그 동안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의 수도 상당했다. 이렇듯 우리의 첫날은 해프닝의 연발이었다. 어느덧 늦어진 시간에 맞추려 우리는 보다 더 속도를 내야만 했다. 조금의 착오가 있었지만 저녁 7시 30분경 우리는 목적지인 강원도의 천문인 마을에 도착하였다. 늦게 도착한 우리들은


 궁수자리와 희미하게나마 하얗게 남아 있는 부분이 은하수의 일부분이다.

식사를 한 뒤 별을 보기 전 별보기 프로그램에 대한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을 받고 10시경부터 별을 볼 것이라는 프로그램 내용을 듣게 되었다.


  별을 보기 전 그리 큰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짙은 어둠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간간히 보이는 안내인의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안내인은 프리젠테이션에서 보여 주었던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가리켜 주며 어떻게 별자리를 보는 것인지 설명을 하였다. 처음엔 모든 별자리가 다 같아 보이고 그냥 별이 있는 것만을 보았으나 차츰 차츰 별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희미하게나마 은하수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시시하게만 생각했었던 별자리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시작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서 목이 상당히 아팠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방아다리 약수터(수과원 정박사님)


이효석 생가에 있던 나귀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 메밀 꽃 필 무렵 ”의 작가 이효석의 생가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언젠가 우리네의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서 보았던 소설이다. 그의 생가, 나에게 있어 처음으로 누군가의 생가를 방문한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 그렸던 생가의 모습은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이었다. 고요한 생가의 모습과 달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자동차와 상점들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역시 활짝 피어 있던 메밀꽃과 소설을 연상시키는 나귀였다. 생가를 뒤로한 채 메밀꽃과 나귀가 우리의 신경을 빼앗고 있었다. 기념의 의미로 메밀꽃 옆에서 각자 독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효석 생가를 거쳐 어느 식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교수님이 내일의 코스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다름 아닌 설악산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모두들 특별이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렇게 정했다. 다음 목적지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방아다리 약수터,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왠지 좀 이상한 이름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약수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수터 입구에서부터 약수터까지 아주 조용한 산책로가 나 있었다. 아주 조용한 곳에 위치한 이곳의 약수를 먹을 생각을 하니 아주 힘이 낳지만 기분만큼 그리 상쾌하고 좋은 맛은 아니었다. 처음 물을 떠서 먹었을 때 순간 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스개 소리로 일행과 약수터 뒤에 아마 철공소 사람들이 쇠를 갈아 넣고 있으리라고 할 만큼 아주 쇠 냄새가 아주 강했다. 한 모금 이상을 마실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표현은 이 방아다리 약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내일의 코스를 위하여 설악산으로 향하였다. 설악산으로 가는 도중 몇 번인가 아주 크고 웅장한 산들을 넘어 갔던 것 같다. 우리가 설악산에 당도하였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설악산 도로 중간 어느 음식점에 들러 오리백숙을 먹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가게는 아주 초라했으나 그 맛만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설악산을 오르던 중 온천에 들러 피곤했던 몸을 따뜻한 물속에서 피로를 풀자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모두들 가까운 온천으로 향하였다. 저녁 무렵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바깥에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숙소로 향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숙소로 향하던 중 교수님이 젊은 시절부터 찾았다는 밀면 집에 들러 맛있는 밀면을 맛보았다. 그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하였다.

 

언양 불고기집

낙산해수욕장

천한봉선생과 함께.

 

  마지막 날의 해가 밝았다. 아침 일찍 모두들 가까운 해수욕장을 찾았다. 여름 휴가철이 조금 지난 후여서 일까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우리네가 쉽게 볼 수 있는 해운대나 광안리와도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물론 동해라 그런지 수영금지 부표가 해변에 아주 가까이 있었다. 한때의 사람들이 왔다 가서 그런지 여기저기 그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바닷가에 온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바다를 뒤로 한 채 우리의 여행은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북어 국으로 배를 채운 후 앞서 부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언제나처럼 앞서 가시는 교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나 우리 차에는 덩치 좋은 장정이 넷이나 탔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교수님의 차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휴게소에서나 교수님 차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 도로 위에서는 힘들었다. 거의부산에 이르렀을 무렵 저녁이 되었다. 정 박사님의 제안으로 언양으로 향하였다. 그 소문만으로도 맛이 좋다는 것을 실제 앞에 놓고 보니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부산에 도착하여 전통찻집에 들러 차를 한잔 마신 후 우리의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 한 다름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해프닝과 많은 사건이 생겼던 MT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차에서 났던 냄새의 출처는 딱 한번이 나의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밝히는 바이다. 정말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누군가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전체사진을 하나 올린다.

 


하계 연구실 단합대회, 2004 A_A_04m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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